20090414 회상


오늘은 강의가 휴강되어 집에서 지난해 회사에서 사용하던 PC에서 백업한 '내문서' 폴더를 열어 보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컨셉기획서며 유머로 사용하던 사진까지 별의 별게 다 들어 있었고 때문인지 다시 지난해를 회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깊이 다시 뒤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붕괴된 어느팀에 소속되어 있던 사원, 사실상 망한게임기획자, 온라인 게임에 미련을 못버리고 있는터에 잡은 팀이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컸을때 같은 회사에 있던 기타 많은 팀에 지원(?)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 주저 없이 FPS제작팀에 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당시에 면접보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직은 회사가 크기 전 인지라 사무실은 작고 좁았지만 개발냄새(?)가 풀풀 풍기는 분위기임에 틀림이 없었고 좁다면 좁고 크다면 큰 대회의실에서 1시간 가량 면접을 봤다. '왜 책을 읽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처음 받은 날이었고 그날 이후로 내가 달라진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게되었다는 것 또한 나는 얼마나 조화로운 사람인가 라는 자기질문에 계속해서 답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질문중 많은 것들이 생각나진 않지만 몇가지를 적어 보자면
  • 가장 존경하는 기획자는 누구인가? 있다면 왜 그를 존경하는가?
  • 인생에서 정말 잘했다 생각하는 두가지만 이야기 해 보라. 있다면 왜 그러한가?
  • 최근에 읽었던 책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있다면 왜 그러한가?

등이었다. 1번 물음에 나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가장 흔하게 나오는 대답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미야모토 시게루', '윌 라이트', '코지마 히데오'등 뻔한 크리에이터들을 나열해 봤자 나는 그들과 일해보지 않았으며 그들이 어떤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그들은 내게 성공한 게임을 만든 사람들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전 회사에서 느꼈던 것들은 창의적인 사고 보다는 빠른 결과물(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획서만을 원했기 때문에 내가 혹시나 그들의 창의적 마인드를 존경한다 해서 그들처럼 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번 물음은 개인적인 내용이라 일단 생략..

3번 물음에 '죄송합니다 최근에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였지만 이 질문 하나 때문에 나는 팀에 들어갈 수 없을뻔 했다. 누가 생각해도 감점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거짓말은 바로 티가 나므로 사실상 이런질문에 당황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머 어찌되었든 내 기획자로서 시간중 가장 기억에 남을 시간이 이때부터 시작 되었다.

이래저래 바쁘게 보내다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몇몇은 팀을 나갔고 많은이들이 새롭게 팀원이 되었다. 나와 맞는 사람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조직이나 그렇듯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부터 왠지 게임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조심스럽게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을때 확신이 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불평 불만의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방대한 정보가 귀에 흘러 들어오고 있었고 때문에 판단력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에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기간은 아무래도 잊을 수 없는 개발기억으로 남을것 같다. 1년사이에 얼굴이 팍삭 늙었더라 잘 모르고 있었는데 후배가 보내준 1년전 사진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삼 깨닿게 되었다. 퇴사 3개월 정도 전부터 일하기가 싫었다. 작업은 전부 반복의 연속이었고 때문에 성취감따위는 없었다. '우리'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왔었지만 이때부터 '나는'이라는 생각이 들어 왔었고 나를 위해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큰소리 치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속이 시원하진 않고 오히려 더 찜찜했었다.

그리고 몇개월이 흐른뒤에 그 모습을 다시 회상하고 나니 아쉬운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조금더 열심히 해볼걸 까지꺼 한번 이겨내 볼걸 하는 별에별 아쉬운 생각들이 많이 났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다함께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었던 때가 생각났다. 사람은 그리워 해 본적이 있지만 오늘 처음 팀이 그리워진 하루였다. 몇년뒤에 더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오늘 하루를 마치려고 한다.

PS. 개발 멘토가 되어 주었던 전석환 차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형으로써 언제나 나를 잡아주셨던 철기형 동근이형 정말 고맙구요 광호는 프로젝트 5개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무럭무럭 자라서 보자~

by 두더지 | 2009/04/14 02:52 | + Rush Hour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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